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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유럽

민중의 대변인이었던 로베스 피에르, 결국 자신도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다.

by Interesting Story 2020.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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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지하 묘지에 프랑스혁명 때 단두대에서 처형당한 시신들의 유해가 있는 것으로 사람들이 알고 있었는데, 6월에 바로 파리에 있는 '속죄의 예배당' 벽 뒤쪽에 유해가 묻혀 있을 수 있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www.mk.co.kr/news/culture/view/2020/06/663206/

 

파리 '속죄의 예배당' 외벽서 프랑스혁명 유해 흔적 발견

루이 16세·마리 앙투아네트 기리기 위해 세운 예배당 공동묘지에서 옮겨진 것으로 보이는 유골 일부 발견

www.mk.co.kr

기사에 보면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는데요,

이곳에는 프랑스혁명을 논할 때면 빠뜨릴 수 없는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 유해도 묻혀있을 수 있다. 로베스피에르는 1793년 집권 후 정의 구현을 내세워 공포정치를 펼치다 1794년 단두대 위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래서, 오늘은 프랑스혁명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Maximilien François Marie Isidore de Robespierre)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 참고로, 막시밀리앵이 외래어 표기법에 의해 맞는 표현이나 본 포스팅에서는 관용적인 표현으로 보다 입에 잘 붙는 막시밀리앙을 사용합니다.

-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

로베스피에르의 정치 입문, 그리고 자코뱅의 지도자가 되어 프랑스혁명 속으로 들어가다.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Maximilien François Marie Isidore de Robespierre)는 프랑스에서 이름에 de를 붙이는 것은 귀족 가문들이 성씨 앞에 사용하던 전치사이기 때문에 귀족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귀족은 아니고 시민계급인 부르주아였습니다. 조부와 아버지 모두 변호사였고요. 이런 로베스피에르는 비교적 불운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아버지의 혼외 자식으로 아라스에서 태어났고, 1764년 어머니가 사망하면서 형제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로베스피에르는 성실히 공부하였고, 루이 르 그랑이라는 명문에서 법학 학위를 받아 아라스 지방법원에서 판사가 됩니다. 이후에는 변호사로 활동을 하고요. 당시 평민과 귀족에 대한 법 앞에서의 평등을 주장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무료 변론을 펼치는 등 어려운 사람들을 대변하는 법률가로서 명성을 떨치게 됩니다.

 

그리고, 1789년, 31세의 나이에 아라스가 포함되어 있던 아르투아 주의 제3신분 대표로 선출이 되고, 이 해 7월에 프랑스혁명이 시발점이 된 바스티유 감옥 습격 사건이 발생합니다. 당시 프랑스에 귀족, 성직자, 평민으로 구성된 계급이 있었는데, 제1신분은 성직자, 제2신분은 귀족, 제3신분은 평민입니다. 여기서 평민이라는 것이 의사, 변호사, 사업가 등 부르주아 계급을 일컫는 것인데, 이렇게 평민의 대표가 된 것으로 정치에 입문하게 되고, 자코뱅파에 가입하면서 서서히 자신의 입지를 넓혀갑니다. 사실 처음에 로베스피에르는 목소리가 작았던 데다가 정치권에서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하면서 큰 존재감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인권 변호사로서 연좌제 금지나 사형제 폐지 등에 대한 법안을 제출하고 다소 급진적인 목소리를 높여가면서 점차 많은 지지자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프랑스에 상퀼로트(Sans-culotte)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의 지지까지도 등에 업게 되죠. 상퀼로트는 귀족들이 입는 퀼로트를 입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프랑스혁명을 주도한 파리의 빈민 대중을 일컫는 말인데, 의식 있는 민중을 뜻하죠. 그리고 결국 로베스피에르는 자코뱅의 당수가 되었는데 1792년 8월에 상퀼로트들의 봉기가 일어나면서 왕정이 폐지되고 9월 21일, 국민공회 정부가 들어서면서 프랑스 공화국이 수립됩니다.

- 1789년 7월 14일, 프랑스 혁명의 시발점이 된 바스티유 습격이 발생한다.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

프랑스혁명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도 많지만, 로베스피에르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추고 요약하였습니다. 여기까지 보았을 때 공포정치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지요.

 

독재자가 되어 공포정치(恐怖政治)를 펼친다.

공화국 정부는 루이 16세를 재판에 회부하고, 사형을 선고합니다. 이때 로베스피에르는 '왕을 처형하지 않는 것은 혁명을 비난하는 것이다.'라고 했다고 하죠. 생쥐스트는 루이 16세가 무죄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혁명이 유죄가 되므로 그를 처형해야 된다고 하였고요. 그리고, 1793년 1월 21일, 2만 명의 시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현재의 콩코드 광장에서 루이 16세는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게 되었죠. 10월 16일에는 마리 앙투아네트도 처형됩니다. 사형제도 폐지를 주장하던 로베스피에르가 국왕을 사형시킨 겁니다.

※ 참고로, 단두대(斷頭臺, 기요틴, Guillotine)가 이 프랑스혁명 때 발명되었습니다. 발명 의도는 고통 없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평등하게 참수형에 처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 단두대에서 처형되는 루이 16세,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

이제 루이 16세까지 처형하고, 국민공회 정부 시기에 지롱드파까지 축출하면서 사실상 자코뱅의 당수인 로베스피에르가 프랑스의 지도자였는데,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바로 공포정치가 시작됩니다. 반대파를 포함한 대중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하고, 이를 통해 권력을 유지하는 것인데, 반대하였다가는 누구나 저렇게 처형될 수 있다는 공포를 심어주는 것이죠. 로베스피에르는 반혁명 분자라든지 반역자라는 명분으로 반대파들을 색출하여 잡아들이기 시작하고, 약 1년 동안 30만 명을 체포, 무려 1만 7천 명을 단두대에서 사형시킵니다. 엄청난 숫자죠. 그냥 반대파를 계속 사형시킵니다. 리용, 방데, 툴롱 등 지방에서는 반혁명군을 진압하기 위해 대학살을 벌이기도 합니다. 1792 사실 로베스피에르는 아주 청렴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자신이 하는 일이 모두 옳다는 독선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 마리 앙투아네트의 참수 장면,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

지롱드파의 롤랑 부인은 처형되기 전에 아래와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오! 자유여, 그대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죄를 범할 것인가!
O Liberté, que de crimes on commet en ton nom!
(Oh Liberty, what crimes are committed in thy name!)

사형 폐지론자가 공포정치를 펼치며 수많은 이들을 단두대를 이용해 사형을 집행하고는, 결국 자유를 위해 자유를 탄압한 것입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유럽의 속담에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The road to hell is paved with good intentions.) 로베스피에르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를 펼치기 시작하는데, 무상의무교육제를 실시하고, 생필품에 대한 가격상한제도(최고가격제) 역시 실시하는데, 이것이 사실 그의 이상이었다기보다는 상퀼로트의 구미에 맞는 정책을 펴고,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한 수단이었던 측면도 있습니다. 로베스피에르는 1793년 9월, 생필품에 대한 최고가격제를 실시하게 되면서 투기 세력과 생필품을 비축하는 자들을 탄압하기 시작합니다. 국가가 가격을 통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생필품이라는 것이 고기나 올리브유, 설탕 같은 식품부터 철과 납 같은 금속, 비누나 담배 같은 것들이었는데, 이때 지롱드 파는 이 법으로 부정적인 영향이 생길 것이라고 반대하였는데, 결국 경제에 재앙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농부나 생산자는 최고 가격 이상으로 팔 수가 없기 때문에 생산 의욕이 감소하게 되고, 낮은 가격에 팔지 않기 위해 물건을 숨기게 됩니다. 식품 부족은 더 악화되었고, 웃돈을 주고 사려는 암시장이 생겨 밀매가 성행하게 되죠.

 

사실 이 이야기의 출처는 불분명한데, 우유에 얽힌 이야기는 유명하죠. 모든 아이들이 우유를 마실 수 있도록 로베스피에르는 우유 가격 역시 통제합니다. 가격을 인하토록 하고, 특정 가격 이상으로는 팔지 못하게 하였는데, 처음에는 우유의 가격이 자연스럽게 내려가겠죠. 하지만, 이제 우유를 공급하던 젖소의 가격 역시 하락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젖소를 키워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된 젖소를 키우던 농민들은 어떻게 해야 될까요. 젖소를 육우로 내다 팔기 시작합니다. 시중에 갑자기 육우가 공급되니 육우의 가격도 덩달아 하락합니다. 이제 시중에 젖소가 없다 보니 우유 가격이 급등할 조짐이 보입니다. 로베스피에르는 젖소를 키울 수 있도록 건초 가격을 통제하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건초를 공급하던 업자들이 건초를 낮은 가격에 파느니 건초를 생산하지 않습니다. 이제 가격을 통제하기 전보다 우유가 더 비싸졌습니다. 모든 사람이 우유를 먹을 수 있도록 하려던 취지에 시행된 법으로 인해 우유는 이제 귀족들만 마실 수 있게 되었네요. 

 

비록 선의에서 시작된 일일지라도, 정치인이 정책을 이상하게 시행하면 이렇게 부작용을 낳습니다. 추경을 하든, 돈을 살포하든 결국 세금을 내고, 그걸 뒷감당하는 것은 국민이라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로베스피에르, 자신이 만든 법에 의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다.

로베스피에르는 자신의 공포정치를 강화하기 위해 프레리알 22일법을 제정합니다. 이 법에 의하면 시민들이 반혁명분자다 싶으면 그냥 잡아다가 재판소로 데리고 가서 배심원의 심증만으로도 처벌할 수가 있었습니다. 위키백과에 나와 있는 이 법의 내용을 살펴볼까요.

이 법률에는 “모든 시민에게 반혁명 분자를 파악하고 치안 판사 앞에 그들을 데려 오기 위해 권한을 준다. 반혁명적인 행위를 발견한 것은 바로 그것을 비판하는 것이 요구된다. "라는 내용의 것이었다.
이 법에 따라 공안위원회는 기소, 고발  등 사법 절차를 크게 간소화했다. 즉, 반혁명적인 행위가 발각되면 증거 없이도 배심원 심증만으로 유죄가 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이 법으로 혐의만으로 반혁명 분자들을 처형할 수 있도록 사법절차가 굉장히 간소화되었는데, 이 법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사람이 불과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1,376명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법으로 받은 모든 처벌이 사형이었습니다.) 무고한 사람도 단두대에서 처형된 사례도 많았는데, 심지어 자코뱅파 내부의 사람들에게조차 숙청의 손길이 미쳤습니다. 오랜 동지였던 조르주 당통 역시 공포정치와 전쟁 중단을 요구하다가 단두대에서 처형되고, 반혁명파에 대한 관용을 주장하던 데뮬랭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제 모두가 다음 차례가 누가 될지 겁을 내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그리고, 로베스피에르가 공포정치와 여러 통제들로 민심을 잃어가자 반(反) 로베스피에르 파가 서서히 세력을 불리기 시작합니다.

 

1794년 7월 27일에 반 로베스피에르파가 로베스피에르와 그 일당들을 체포하고 쿠데타를 일으키는 '테르미도르의 반동(Thermidorian Reaction)'을 일으킵니다. (테르미도르는 프랑스혁명정부가 세운 공화력의 11월입니다. 현재의 양력 기준으로 7월) 그리고, 7월 28일, 국민공회군에 의해 체포된 로베스피에르는 자신이 반대파에게 해온 그대로 기소나 판결까지 모든 것이 간소화된 절차를 적용받고 단두대에서 사형이 집행되어 최후를 맞이합니다.

- 테르미도르의 쿠데타, 체포되면서 로베스피에르의 턱뼈가 날아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지출처: 위키백과 -


우리는 언제나 역사 속에서 교훈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위의 프랑스 대혁명과 로베스피에르의 이야기를 보면서도 마찬가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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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코난 2020.10.12 10:24

    현정부의 브레이크없는 권력이 얼핏 느껴지내요
    선의처럼 보이지만 지옥으로 갈수 있음을 명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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