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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우리나라

조선왕조실록에서 찾아볼 수 있는 괴수 출현에 대한 기록

by Interesting Story 2020.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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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개봉하였던 물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기본적인 모티브는 16세기 중종 당시 괴수가 나타난 일과 작서의 변에서 따온 것으로 보이는데요, 실제 기록을 바탕으로 하였기 때문에 영화의 완성도나 재미는 차치하고라도 미스테리라는 소재가 그렇듯이 굉장히 흥미로운 부분이 있습니다. 나름 유명한 이야기이기도 한데, 그럼 조선왕조실록을 따라가 보면서 이 괴수 출현에 대한 기록들을 살펴보겠습니다.

- 물괴, Monstrum, 2018, 허종호 감독, 출처: 다음영화 -

1. 기이한 짐승이 나오다

중종 6년 5월 9일 무오 1번째 기사 (1511년)

http://sillok.history.go.kr/id/kka_10605009_001

夜有獸類犬, 自文昭殿後, 出向前殿。 殿僕怪而逐之, 踰西墻走。 命驅索不得。
【史臣曰: "寢殿非野獸所入之處, 前夜廟園松火, 今夜有獸怪。 數日之內, 災與變比見疊出, 必有所召也。"】

밤에 개같은 짐승이 문소전(文昭殿) 뒤에서 나와 앞 묘전(廟殿)으로 향하는 것을, 전복(殿僕)이 괴이하게 여겨 쫓으니 서쪽 담을 넘어 달아났다. 명하여 몰아서 찾게 하였으나 얻지 못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침전(寢殿)은 들짐승이 들어갈 곳이 아니고, 전날 밤에 묘원(廟園) 소나무가 불타고 이날 밤 짐승의 괴변이 있었으니, 며칠 동안 재변이 자주 보임은 반드시 원인이 있을 것이다.

중종이 즉위하고 6년(1511년), 5월 9일에 개같은 짐승이 나타났다가 달아났는데, 쫒았으나 찾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괴수의 첫 출현인데, 개같은 짐승이라고 하니 아직은 괴수로 속단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이 이야기의 시작을 알리는 기록입니다.

 

2. 장마로 인해 수성하고 구황하는 뜻을 널리 알리라고 전교하다

중종 11년 7월 24일 계묘 1번째기사 (1516년)

http://sillok.history.go.kr/id/kka_11107024_001

○癸卯/敎政府曰: "予本昏庸, 叨主一國, 暗於君人之道, 凡百動爲, 不循于軌, 率多紕繆, 上干天怒; 下失人和, 戾氣充積, 形爲災變, 天文示異, 地紀失序, 人妖、物怪, 駢見疊出。 雖切警懼之懷, 尙昧修省之方, 無望消弭, 益咈天意, 爰自春月, 至于盛夏, 亢旱焦土, 穡事幾廢, 曁入秋節, 淫霖恒若, 歷旬不止, 川潦暴溢, 沈損田畝, 雨水之害, 平安一道尤劇, 又有大風之異, 作於慶尙, 摧屋拔木, 禾稼多傷。 農功旣困於久旱, 以値風水之災, 有秋之望, 已難可冀, 深懼凶荒荐至, 民生失業, 窹寐憂慮, 輾轉靡寧。 是何以予一人之罪, 轉及無辜赤子, 一至此極耶? 興言及玆, 予懷若焚。 方欲省愆洗心, 圖新厥政, 庶回上天之心, 以救黔黎之命, 茫無津涯, 迷不知方。 惟望大小臣僚, 尙不棄予一人, 協心輔助, 匡救不逮。 其體予懷, 曉諭中外。"

정부(政府)에 하교(下敎)하였다.

"내가 어리석은 자질로 외람되게 한 나라를 맡으매, 임금의 도리에 어두워 온갖 거동이 궤범에 맞지 않고 거의 다 잘못되니, 위로 천노(天怒)를 범하고 아래로 인화(人和)를 잃으므로 여기(戾氣)가 충적(充積)하여 재변으로 나타나서, 천문(天文)이 이변을 보이고 지기(地紀)가 차서를 잃으며, 인요(人妖)·물괴(物怪)가 거듭 나타났다. 비록 경구(警懼)할 마음이 간절하기는 하나, 오히려 수성(修省)하는 방도에 어두워서, 재변이 그칠 가망이 없고 더욱 천의(天意)를 거스리매, 봄부터 한 여름까지 큰 가뭄이 초토(焦土)로 만들어 농사를 거의 망쳤고, 가을철에 들어서 장마가 계속되어 열흘이 지나도 그치지 않아서 냇물이 사납게 넘쳐 전지(田地)를 침손(沈損)하였는데 비의 재해는 평안도가 더욱 심하고, 또 대풍(大風)의 이변이 경상도에 일어나 집을 무너뜨리고 나무를 뽑아 곡식이 많이 상하였다. 농사가 이미 오랜 가뭄에 시달렸는 데다가 바람과 물의 재해를 만났기 때문에 추수에 이미 가망이 없으니, 흉황(凶荒)이 거듭 이르러 백성이 생업을 잃을 것을 깊이 염려하매 자나깨나 근심으로 불안하여 편치 않다. 이 어찌 나 한 사람의 죄가 허물 없이 백성에게까지 옮아가서 모두 이런 극심한 지경에 이르렀는가? 말이 여기에 미치면 내 마음이 타는 듯하다. 바야흐로 허물을 살피고 마음을 씻고서 정치를 새롭게 하여 하늘의 마음을 돌려서 백성의 목숨을 구제하고자 하나, 망망한 큰 강에 나루터가 없듯이 미혹하여 방도를 모르겠다. 오직 바랄 수 있는 것은 대소 신료(大小臣僚)가 아직 나를 버리지 않고 마음을 합하여 보조하여 부족한 것을 바로잡아 구제하는 것이다. 내 마음을 잘 알아서 중외(中外)에 효유(曉諭)하라."

1516년 인요와 물괴가 거듭 나타난다고 합니다. 중종이 마음이 여린 편인지 자신을 탓합니다. 1511년 기이한 짐승이 나타난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괴수와 관련된 기괴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3. 승정원이 소라 부는 갑사의 가위눌린 꿈을 아뢰다

중종 22년 6월 17일 임술 1번째기사 (1527년)

http://sillok.history.go.kr/id/kka_12206017_001

○壬戌/政院啓曰: "去夜有吹螺甲士一名, 夢壓氣絶, 同類驚起救療, 而喧呼, 諸軍一時驚動。 起而視之, 有物如厖狗, 大如兒馬, 自吹螺赤房, 走向西明門。 且西衛所部將, 亦牒報云: ‘軍士等亦見是物, 自忠贊衛廳隅, 高聲馳突, 向所而來, 皆驚惶叫號, 吹螺赤房, 且有腥膻之臭。’ 云。 此乃怪誕之事, 不足取信, 然闕內之事, 故啓達。"

정원이 아뢰었다.

"간밤에 소라 부는 갑사(甲士) 한 명이 꿈에 가위눌려 기절하자, 동료들이 놀라 일어나 구료(救療)하느라 떠들썩했습니다. 그래서 제군(諸軍)이 일시에 일어나서 보았는데 생기기는 삽살개 같고 크기는 망아지 같은 것 취라치(吹螺赤)방에서 나와 서명문(西明門)으로 향해 달아났습니다. 그리고 서소위 부장(西所衛部長)의 첩보(牒報)에도 ‘군사들이 또한 그것을 보았는데, 충찬위청(忠贊衛廳) 모퉁이에서 큰 소리를 내며 서소위를 향하여 달려왔으므로 모두들 놀라 고함을 질렀다. 취라치 방에는 비린내가 풍기고 있었다.’ 했습니다. 이것은 바로 괴탄(怪誕)한 일이니 취신(取信)할 것이 못됩니다. 그러나 궁궐 안의 일이므로 감히 계달(啓達)합니다."

1527년에 괴물과 관련된 기록이 연달아 등장합니다. 작서의 변이 그 해 2월에 있었는데, 4개월 후입니다. 갑사 한 명이 기절할 정도의 가위에 눌리고, 취라치방에서 튀어나온 괴물이 삽살개같이 생기고 망아지 정도의 크기에 비린내까지 풍기고 있었다고 하네요. 삽살개 같으면서 망아지 정도의 크기라... 비슷한 동물이 떠오르지는 않습니다만, 하여튼 이 뒤에도 기록이 더 있는데, 괴물로 인해 공포가 서서히 조장되고 있습니다. 은근히 흥미진진합니다.

- 과거의 삽살개 그림, 출처: 나무위키 삽살개 항목 -

 

4. 홍문관 전한 박우 등이 세자 이피의 부당함을 아뢰다

중종 22년 6월 23일 무진 1번째기사 (1527년)

http://sillok.history.go.kr/id/kka_12206023_001

○戊辰/弘文館典翰朴祐等啓曰: "近因物怪, 自內驚動, 欲爲移御。 當初見之者, 非有識人也, 乃出於無知軍士, 而其妖說之眞妄, 亦不可的知。 假使, 有此妖怪, 人君當堅定心志, 不爲搖動然後, 下人亦不疑(惟)〔懼〕 矣。 今若移御則下人愚惑, 傳播訛言, 而厥終之弊, 必不小矣。 大抵, 人君堅定則妖怪自止, 請勿移御。" 傳曰: "上殿以世子年幼, 强欲移避, 予豈能强止? 然當以侍從之意, 更啓也。"

홍문관 전한(弘文館典翰) 박우(朴祐) 등이 아뢰기를,

"근일 물괴(物怪) 때문에 궁내에서 경동하여 이어하시려 하고 있습니다. 처음 본 자가 유식한 사람이 아니고 무지한 군인이었으니, 그 요괴스러운 말의 진부를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가령 이런 요괴가 있었다 하더라도 임금이 심지(心志)를 굳게 정하여 동요하지 않은 뒤에야 아랫사람들 또한 의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이어하신다면 하인들이 미혹, 와언(訛言)을 전파하게 되어 그 끝의 폐단이 반드시 적지 않을 것입니다. 대저 임금이 심지를 굳게 정하면 요괴는 절로 멈추는 것입니다. 이어하지 마소서."

하니, 전교하였다.

"상전(上殿)께서 세자의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굳이 이피시키려 하시니 내가 어떻게 강경히 중지시킬 수 있겠는가. 그러나 시종(侍從)의 뜻으로 다시 아뢰겠다."

임금이 심지를 굳게 정하면 요괴는 절로 멈춘다고 하며 이어(移御, 거처하는 곳을 옮김)하지 말라고 합니다. 1527년 6월에 관련 기록들이 몇 개가 나타나고 있는데, 궐내에서 계속 가위에 눌리는 요괴로운 일이 나타난다는 기록이 있고, 임금이 이어까지 고려하는 이 괴물 출현 소동이 단순해 보이지 않는군요. 심상치 않게 흘러갑니다.

 

5. 사헌부가 궐내의 요괴한 일로 경동하는 자를 율에 따라 죄하기를 아뢰다

중종 22년 6월 26일 신미 4번째 기사 (1527년)

http://sillok.history.go.kr/id/kka_12206026_004

○憲府啓曰: "因妖怪, 欲爲移避之計, 出於慈旨, 故臣等未敢啓。 當初稱見物怪喧噪時, 兵曹、都摠府及衛部將, 非徒不能嚴禁, 亦自畏怯, 故愚惑軍士, 尤爲驚動。 且兵曹入直堂上、郞官, 當依律定罪, 而命棄之。 以此, 軍令尤爲不嚴。 今後敢有如前驚譟者, 幷依律定罪。" 【臺官被論退去, 故無傳敎。】

헌부가 아뢰었다.

"요괴로 인하여 이피(移避)하려는 계획을 세운 것은 자전의 뜻에서 나온 것이므로 신들이 감히 아뢰지 못하겠습니다. 당초 괴물을 보았다면서 떠들 때에 병조·도총부(都摠府) 및 위부장이 엄히 금지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또한 스스로도 두려워하고 겁냈기 때문에 어리석은 군사들이 더욱 경동하였습니다. 또 병조의 입직 당상(入直堂上)과 낭관(郞官)은 의당 율에 의하여 죄를 정해야 할 것인데, 버려두라고 명하셨으므로 군령이 더욱 엄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뒤엔 감히 전같이 경동하여 떠드는 자가 있으면 모두 율에 의하여 죄를 정하게 하소서." 【대관(臺官)이 논박받고 물러갔으므로 전교가 없었다.】

사헌부에서 경동하여 떠드는 자가 있으면 죄를 물어야 한다는 상소를 올립니다. 그 동안 괴수와 관련된 소동이 더 있었고, 여러 루머가 양산되어 퍼뜨려지고 있으니 이에 대해 어떤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었겠죠. 하지만,  중종은 이에 대해 별다른 전교가 없었습니다.

 

6. 대비전·대전·중궁전·세자빈·세자가 경복궁으로 이어하다

중종 25년 7월 16일 계묘 1번째기사 (1530년)

http://sillok.history.go.kr/id/kka_12507016_001

○癸卯/大妃殿移御于景福宮。 大殿、中宮殿、世子嬪、以此移御, 世子最後移御。 【大妃所居寢殿, 白晝鬼物, 亂打窓壁, 或以雜物欺戲。 非上在側時, 則恣行摸打, 無所不爲, 故移御。】

대비전이 경복궁으로 이어하였다. 대전(大殿)·중궁전(中宮殿)·세자빈(世子嬪)이 이때 함께 이어하였고 세자가 제일 나중에 이어하였다. 대비가 거처하는 침전에는 대낮에 괴물이 창벽(窓壁)을 마구 두드리는가 하면 요사한 물건으로 희롱하기도 했다. 상(上)이 곁에 모시고 있지 않을 때에는 못하는 짓이 없이 마구 난타했으므로 이어한 것이다.】

1530년, 대비전이 결국 경복궁으로 이어를 하는데, 그 이유가 사뭇 놀랍습니다. 대비가 거처하는 침전에 대낮에 괴물이 창벽을 마구 두드리는 등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괴수로 인해 이어까지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니, 가벼운 일은 절대 아닌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7. 금군이 밤에 놀라다

중종 27년 5월 21일 무진 3번째기사 (1532년)

http://sillok.history.go.kr/id/kka_12705021_003

○禁軍夜驚。 【或妄言: "有怪物形如馬, 馳突橫行。" 云, 禁軍驚駭鬨動。】

금군(禁軍)이 밤에 놀랐다. 【어떤 자가 망령된 말로 ‘말[馬]같이 생긴 괴물이 나타나 이리저리 치닫는다.’고 하자, 금군들이 놀래어 소리치면서 소동을 피웠다.

말같이 생긴 괴물이 나타나 이리저리 치달아 금군들이 소리치면서 소동을 피울 정도로 많이 놀랐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다시 실물이 나타난 기록입니다. 참고로 금군은 국왕의 친위군인데, 괴수가 궁궐에 나타나 날뛰었다니, 놀라운 일입니다. 그리고 중종실록에서는 이 기록을 끝으로 이제 더 이상 괴수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 혹시 전설 속의 동물 해태가 나타난 것인가! 출처: http://minhwacenter.com/base/business/part_01.php?com_board_basic=read_form&com_board_idx=24 -

 

6. 경성에 밤에 소동이 일어나다

인종 1년 7월 2일 임술 9번째기사 (1545년)

http://sillok.history.go.kr/id/kla_10107002_009

○京城夜驚。 【自上昇遐之日, 京中人自相驚動, 衆播妖言曰: "有怪物夜行, 所過黑氣黯黮, 聲如衆車之行。" 轉相狂惑, 群聚齊譟, 自闕下達于四街, 擊錚追逐, 聲振城中, 人馬辟易, 巡卒不能禁。 如是者三四日而止。】

경성(京城)에 밤에 소동이 있었다. 【상께서 승하하시던 날에 경중(京中) 사람들이 스스로 경동(驚動)하여 뭇사람이 요사한 말을 퍼뜨리기를 ‘'괴물이 밤에 다니는데 지나가는 곳에는 검은 기운이 캄캄하고 뭇수레가 가는 듯한 소리가 난다.’ 하였다. 서로 전하여 미친 듯이 현혹되어 떼를 지어 모여서 함께 떠들고 궐하(闕下)로부터 네거리까지 징을 치며 쫓으니 소리는 성안을 진동하고 인마(人馬)가 놀라 피해 다니는데 순졸(巡卒)이 막을 수 없었다. 이와 같이 3∼4일 계속 된 후에 그쳤다.

인종 때 다시 기록에 괴물이 등장합니다. 상께서 승하하시던 날에 요사한 말이 퍼졌다고 하는데, 1545년 7월 2일은 인종이 죽은 다음 날입니다. 괴물이 밤에 다니는데 지나가는 곳에는 검은 기운이 캄캄하고 뭇수레가 가는 듯한 소리가 난다고 하네요. 사람들이 징을 치면서 내쫓는데, 순졸이 막을 수가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려 3-4일이나요. 우연의 일치인지 인종이 죽은 날에 말이지요. 이 기록을 마지막으로 조선왕조실록에는 괴물에 대한 기록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괴수의 출현에 대해서 당시의 정치적인 상황과 연관지은 해석들이 많습니다. 중종반정과 기묘사화, 작서의 변으로 혼란한 시대상이 투영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죠.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은 후대의 특정 사람들이 편찬한 역사서가 아니라, 당대에 기록되어 신빙성이 매우 높은 기록이기 때문에 저는 정말로 괴수가 출현하였고, 있는 그대로 기술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는 그냥 생소한 동물이 나타났는데, 당대에 조금 과장되었을 수는 있겠습니다만.

 

조선왕조실록에는 이 외에도 미스테리한 일들을 은근히 전하고 있는데요, 그중의 하나인 중종 시기 괴수의 이야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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