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우리나라

표주록(漂舟錄)_이지항의 표류기를 통해 본 우리 민족의 밥사랑

by Interesting Story 2020. 8. 3.
반응형

우스개 소리로 우리나라 사람들을 밥에 미친 민족이라고 합니다. 음식을 먹고 나서 볶음밥으로 마무리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고, 밥을 매개로 한 대화가 많아 나온 우스개 소리입니다.

-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이미지, 우리는 많은 음식을 볶음밥으로 마무리한다. -
-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밥에 미친 대한민국 -

사실 아주 재미있는 유머이기도 한데, 기록으로도 우리나라는 밥을 많이 먹은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실 저도 어린 시절에는 보통의 가정에서 사용하는 밥공기가 지금과는 사뭇 달랐고요. 아래 사진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 중인 남자의 식사 모습, 출처: 나무위키 -

 

그런데, 이렇게 밥에 집착하는 모습을 표주록(漂舟錄)이라는 기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어서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표주록(漂舟錄) 속의 밥에 집착하는 모습

표주록은 조선시대의 무신인 이지항이 약 1년간 (1696년 4월 13일 - 1697년 3월 5일) 일본의 북해도(홋카이도) 지역을 표류하면서 겪은 일들을 기록한 기행문입니다. 표류의 시작은 1696년 4월 중순 (숙종 22년) 부친의 상을 치르고 부산 인근에서 영해(지금의 영덕군 영해면)로 가기 위해 배를 탔다가 풍랑에 휩쓸리게 되는데요, 5월 12일에 일본 북해도의 북단에 위치한 레분도와 리시리도에 정박하게 되면서입니다.

- 이지항의 표류와 귀환 경로, 출처: http://blog.naver.com/kordipr/221100991608 -

사실 표주록의 내용을 모두 옮겨도 굉장히 흥미로운 이야기이지만, 이 포스팅에서는 밥에 집착하는 기록만 들여다보기로 하겠습니다.

 

이지항 일행은 북해도의 레분도와 리시리도에 정박하면서 아이누족을 만나게 됩니다.

- 전통의상을 입은 아이누족, 1904년 촬영, 출처: 나무위키 -

그리고, 5월 13일 내지 14일로 추정되는 기록을 보면 아래와 같이 나옵니다. 참고로 표주록은 일기 형식으로 비교적 표류 당시의 일들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지만, 날짜를 정확하게 기록하지 않고 다음 날 등으로 표현하여 빠진 날도 더러 있습니다.

날이 저무니, 그들은 또 어탕 한 그릇과 고래 포 몇 조각을 주는 것 외에는 끝내 밥을 짓는 거동이 없었다. 나는, “천하의 인간은 다 곡식밥을 먹는다. 이 무리는 사람의 모양을 하고 있는 터이니, 어찌 밥 짓는 풍속이 없겠는가? 이것은 반드시 우리 여러 사람의 밥을 먹이는 비용을 꺼리고, 쌀을 아끼느라 이처럼 밥을 짓지 않는 것이다.” 생각하였다. 그리고는, 집집마다 가서 밥을 짓는가를 알아 보았더니, 모두 밥을 짓지 않고, 다만 어탕에다 물고기의 기름을 섞어서 먹고 있어서, 그들이 본시 밥을 지어 먹지 않는 자들임을 알았다. 배에는 쌀이 떨어졌기에 어찌할 수가 없어서 여행용 그릇을 내보이면서 쌀을 달라고 청해 보았지만, 대답할 바를 몰랐다. 나는 쌀알을 가리켜 보였지만 머리를 흔들고는 대답하지 않는 것을 보니, 그 무리는 정말로 쌀이나 콩을 모르는 자들이었다. 우리들은 다 굶주린 채로 그곳에서 잤다. 아침에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하였지만 갈 방향을 정할 수가 없었다. 나는 한 언덕에 올라 사방을 멀리 바라보니, 육지가 동북쪽에 뚜렷이 보였다. 선인들에게 청해 이르기를, “이곳에서는 밥을 주지 않고, 배에는 쌀이 떨어졌으니, 꼭 굶어 죽게 될 것이다."

출처 : http://dylanzhai.egloos.com/3494296

저는 위의 내용을 읽으면서 굉장히 웃었는데요, 아이누족이 어탕과 고래포를 나눠주고 밥을 안주자, 쌀을 아끼려고 한다고 의심을 합니다. 그리고는 집집마다 확인까지 하는데, 결국 원래 밥을 지어먹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굶어 죽게 될 것이라고 하는 대목에서는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어탕이나 포 등 생선을 먹고는 성에 차지 않는 것이 시대를 건너뛰어 느껴지지 않나요?

 

당시 홋카이도는 굉장히 생소한 지역이었고, 표주록을 통해서 18세기 조선인의 눈으로 본 북해도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만, 저는 내용들 중에 위의 밥에 집착하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으로 남아 있어서 소개해 보았습니다.

 

※ 이 포스팅은 어떤 비하의 의도도 없음을 밝힙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