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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우리나라

금계필담(錦溪筆談)_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

by Interesting Story 2020.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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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남자

예전에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공주의 남자라는 사극이 있습니다. 저 역시 재미있게 보았던 드라마인데요, 드라마 상에는 김종서의 아들 김승유와 세조의 딸 이세령이 등장하고, 서로 애절한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조카를 폐위하고 스스로 왕이 된 수양의 딸과 단종을 보필하다 세조에게 죽임을 당한 김종서의 아들이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이 가히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2011년 방영되었던 공주의 남자, 이세령과 김승유역으로 문채원과 박시후가 출연하였다. 출처: https://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7/12/2011071201250.html -

그런데, 이 이야기는 어디서 왔을까요? 당연히 조선왕조실록에는 이 인물들이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조선 왕실의 족보인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紀略)'의 세조편을 참조하면 세조에게는 의숙공주(懿淑公主)라는 외동딸이 있었고, 이 딸은 계유정난(癸酉靖難) 이후에 정인지의 아들인 정현조와 혼인한 것으로 나옵니다. 이 기록으로 볼 때 공주의 남자에 등장한 인물들은 가공의 인물들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지요. 하지만, 설정 자체가 완전히 허구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조선 후기 문신 서유영(徐有英)의 '금계필담(錦溪筆談)'수양대군의 딸 이세희와 김종서의 손자가 나눈 사랑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드라마의 각본도 이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었을 것으로 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 선원계보기략 세조편, 의숙공주가 정현조와 혼인하였다는 기록, 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img_pg.aspx?cntn_cd=IE001334691 -

 

금계필담

금계필담은 1873년 조선 후기의 문신 서유영이 자신이 들은 141편의 이야기를 수록한 설화집입니다. 관직에서 쫓겨난 서유영이 말년에 무료함을 달래고자 심심풀이 겸 인생을 정리한다는 명목으로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조선의 숨겨진 뒷 이야기, 조선의 기록에서 빠진 이야기를 나타내는 좌해일사(左海逸事)라는 부제를 생각해 보면 어떤 느낌의 책인지 쉽게 감이 옵니다.

- 금계필담, 서유영이 지은 야담집, KBS역사스페셜 83화, , 조선의 역사를 바꾼 계유정난, 세조는 승리했는가? -

 

금계필담에 기록된 김세희와 김종서의 손자 이야기, 광묘유일공주(光廟有一公主)

금계필담에 기록된 광묘유일공주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세조에게는 공주가 하나 있었는데, 공주는 계유정난의 피바람을 지켜보면서 조정과 왕실에 염증을 느끼게 되고, 아버지 수양의 왕위 찬탈을 반대하면서 대립하게 됩니다. 그리고 수양으로부터 큰 분노를 사면서, 부녀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게 되는데, 이런 상황을 염려한 정희왕후 윤씨가 패물을 챙겨서 공주를 유모와 함께 멀리 도망가도록 한 다음, 공주가 사망한 것처럼 꾸미게 되죠.

도망을 친 공주와 유모는 지칠 대로 지쳐서 충청북도 보은에 당도합니다. 그리고, 길에서 어떤 청년을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요,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로가 계유정난으로 인해 피신하였다는 것을 알고는 동질감을 느끼게 되어 산속의 토굴에서 함께 기거하게 됩니다. 1년 정도 함께 살다가 둘은 사랑에 빠져 혼례까지 올리고요. 그제야 청년은 공주에게 계유정난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게 되는데, 유모가 자신들의 신분을 밝힙니다. 그러자 청년은 울음을 터뜨리면서 자신은 김종서의 손자라고 말합니다. 서로의 집안이 원수지간임을 알게 된 거죠. 하지만, 이렇게 기구한 운명으로 만난 두 사람의 사랑은 더 깊어집니다.

나중에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세조는 이들을 불쌍히 여겨 모든 것을 다 용서할 테니 한성으로 올라오라고 명령하였지만, 두 사람은 신분을 숨긴 채 어딘가에서 함께 살았다고 합니다.


서유영은 박승휘로부터 이야기를 들었으며, 자신이 이야기를 문서화하여 임금에게 보고하려 하자 박승휘가 근거가 없다며 가로막았다는 아쉬움을 이야기의 말미에 토로합니다.

※ 참고로 박승휘는 철종 시기 승지, 고종 시기 이조판서를 지냈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세상의 이목과 시선으로부터 두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 공식적인 기록에서 지워진 것인지, 사실 여부를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할 수 있는 세조의 딸 이세희와 김종서의 손자 사이의 사랑 이야기는 그 시대를 생각해 보았을 때 정말 애절하고 애틋하죠. 그리고, 권력욕에 희생된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와 삶을 통해 사랑을 떠나서 이득을 취할 수 있는 방향과 고난한 현실이지만 정도를 가는 선택에서 역사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맞는지 간접적으로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우리 역사 속의 흥미로운 이야기, 금계필담의 광묘유일공주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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