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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유럽

18세기 프로이센의 감자 보급을 위해 감자는 귀족만 먹어야 한다

by Interesting Story 2020.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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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2세의 무덤

독일 동부 포츠담에 있는 상수시궁의 옆 뜰에 프로이센의 제3대 국왕, 계몽주의 군주 프리드리히 2세 (프리드리히 대왕, 1712 - 1786) 의 무덤이 있습니다. 그리고, 보통 무덤에 가면 사람들이 추모를 위해 꽃을 가져다 두죠. 그런데, 프리드리히 2세의 무덤에 방문한 추모객들은 꽃과 함께 특이하게도 감자를 가져다 둡니다.

- 프리드리히 2세의 무덤에는 꽃과 함께 감자가 놓여있다. 출처: https://berlinexperiences.com/featured-experiences/visit-the-grave-of-frederick-the-great/ -

어떤 연유로 사람들이 프리드리히 2세의 무덤에 감자를 두고 가는 걸까요? 바로 프리드리히 2세가 '감자 대왕'이라고 불리기 때문인데, 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악마의 작물, 감자

18세기 오스트리아 왕위계승 전쟁(1740-1748)과 7년 전쟁(1756-1763)으로 프로이센의 국토는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지고, 심지어 1774년에 대흉년이 덮칩니다. 전쟁에서는 승승장구했지만, 전쟁이라는 것이 그렇듯이 당연히 사람들의 삶은 굉장히 궁핍해졌습니다.

 

이때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는 감자에 주목합니다. 16세기부터 개척된 항로를 통해 신대륙에서 들어온 감자가 기상 조건이 좋지 않은 곳이나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랄 뿐만 아니라 생산력이 높아 대량 수확도 가능하였기 때문입니다. 재배하는데 특별한 농기구도 필요하지 않았죠. 영양분도 풍부했고요. 하지만, 당시의 유럽인들은 감자를 '악마의 작물'이라고 부르며 먹지 않았습니다. 귀족들이 관상용으로 기르거나 돼지같은 가축의 사료로 사용되었죠.

- 감자꽃, 중세 유럽에서 귀족들이 식용이 아니라 관상용으로 감자를 길렀다. 출처: 위키피디아 -

왜 유럽인들은 감자를 '악마의 작물'이라고 부르며 먹지 않았을까요.

 

사실 감자는 땅속 줄기인데, 유럽인들은 감자가 열매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미개한 남미인들이 먹는 땅속에서 열리는, 흙이 덕지덕지 묻은 열매라니.. 거부감이 듭니다. (제 생각이 아니라 중세 유럽인들의 생각입니다.) 게다가 성서에도 나오지 않는 저 작물은 생김새부터가 울퉁불퉁하고 무언가 색도 갈색이라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감자 싹에는 독까지 있어 복통이나 구토를 일으키죠. (감자 싹에는 실제로 솔라닌(Solanine)이 있습니다.) 심지어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땅속에 주렁 주렁 달리니 악마의 농간이라고 생각까지 하면서 이렇게 감자는 '악마의 작물'이라고 불리게 됩니다. 그리고 감자가 한센병을 일으킨다는 괴소문까지 돌았고요.

- 감자는 열매가 아닌 덩이줄기, 출처: 위키피디아 -

감자는 귀족만 먹을 수 있다

프리드리히 2세는 기근을 해결하기 위한 구황작물(救荒作物)로 감자 재배를 장려하고 전국에 심으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는 작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악마의 작물' 감자를 먹으라니... 맛이 없어 개도 먹지 않는걸 왜 사람에게 먹이려 드느냐는 상소문이 빗발칩니다. 농민들은 이건 폭정이라며 보급된 씨감자들을 모두 불태워버리면서 강렬하게 저항합니다. 사실 프로이센의 경우에는 왕이 직접 나서서 이렇게 감자를 보급시키려고 했지만, 당시 유럽에서는 밀의 수탈을 위해 농민들이 감자를 주식으로 먹게 하려고 강제한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프리드리히 2세는 자신의 식사에 매일 감자를 이용한 요리를 올리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제 감자를 개도 안먹는다고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감자의 보급은 지지부진했죠. 그러자 프리드리히 2세는 아래와 같이 선포합니다.

 

감자는 귀족만 먹을 수 있다. 일반 농민들은 감자를 재배하지 못한다.

 

그리고, 왕실의 농장과 여러 밭에서 감자를 재배하면서 근위병까지 세워 보초를 서게 합니다. 사람들은 이제 '아니, 감자가 귀한 작물인가?' '전하가 먹는 저 감자는 좀 다른가?' 하면서 감자를 훔쳐가기 시작합니다. 물론 밤에는 사람들이 감자를 훔쳐갈 수 있도록 경비를 철수시키거나, 훔쳐가는 것을 눈감아주었죠. 서서히 사람들이 몰래 감자를 경작하기 시작합니다. 감자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사람들이 밀거래까지 합니다.

 

감자대왕, 프리드리히 2세

그리고, 이렇게 감자는 프로이센 전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프리드리히 2세는 감자를 보급한 이유로 '감자대왕, Der Kartoffelkönig, the Potato King'이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별명보다 애칭이라고 하는 편이 낫겠네요. 그리고, 사람들은 백성들을 굶주림에서 해방시키고자 감자를 보급한 프리드리히 2세를 추모하며, 묘지에 감자를 두고 오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이 이야기는 마케팅적인 관점에서 리브랜딩(rebranding)의 예시로 사용하기도 하는 일화입니다.

- 프리드리히 2세가 감자 수확을 감독하고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


감자와 관련된 역사 속의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1. 이렇게 프리드리히 2세의 노력으로 감자가 널리 보급된 이후 1778년 바이에른 계승 전쟁(War of the Bavarian Succession)이 일어나는데, 전선이 정체되면서 많은 군인들이 감자 약탈에 열을 올렸는데 실제로 많은 군인들이 굶주림으로 사망하였습니다. 이 전쟁은 일명 감자전쟁(Kartoffelkrieg, Potato war)으로 불립니다.

 

2.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는 엄청난 수탈이 있었는데, 그 와중에 감자가 주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감자 외에는 먹을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1847년부터 감자역병이 발생, 영국에서 엄청난 수탈을 해가는 것도 모자라, 의존하고 있던 감자까지 흉작이 되면서 당시 800만이었던 아일랜드 인구 중 100만 - 200만 정도가 아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많은 수가 이민을 가게 됩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아일랜드 대기근(Great Famine)입니다.

- Famine Memorial, Dublin에 있는 대기근 기념 동상, 출처: 위키피디아 great fami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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