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족인 여진이 세운 금나라와 청나라, 몽골제국의 칭기즈 칸으로 익히 알려진 원나라는 중원을 차지한 바 있고, 우리 역사와도 관련이 깊어 우리가 비교적 익숙하게 알고 있지만 거란족에 대해서는 다소 낯설고 생경하게 느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916년 거란(契丹)이 건국되고, 1125년 금나라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약 209여 년간 동북아를 호령한 유목 민족으로, 우리에게는 발해를 멸망시키고, 수차례 고려를 침범한 적이 있지요. 그리고, 우리나라의 팔만대장경도 요나라의 대장경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만큼 거란 역시 소홀히 할 수는 없는 역사입니다.
거란(契丹), 야율아보기의 대통합으로 건국
907년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가 유목민족인 거란족을 대통합하고, 916년 칭제를 하면서 국호를 거란으로 하였습니다. 거란이라는 종족 이름이 국호가 된 셈입니다. 참고로, 황제가 된 야율아보기는 925년에 발해를 침공하기 시작해 결국 926년에 멸망시켰죠. 한민족의 만주 통치를 끝장낸 인물입니다. 그렇다 보니 우리 역사에서는 그다지 호감은 아니라서 그런지 여진이나 몽골에 비해 비중이 적게 다루어지는 이유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유명한 서희의 담판이나 강감찬의 귀주대첩 역시 우리 역사에서 높게 평가되면서 그 반대급부로 거란을 다소 낮게 평가하게 된 이유가 아닌가 합니다. 이 부분은 나중에 다루어 보도록 하죠.) 이후 947년 2대 황제 태종이 요(遼, 또는 대요, Liao dynasty)로 변경하였는데, 요산(遼山)이라는 산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전성기를 누리다가 9대 천조제에 이르러 북송과 동맹을 맺은 금나라에 의해 1125년 멸망하게 됩니다. 보통 이게 요나라의 끝이라고 알고 계신 분들이 많은데, 야율대석(耶律大石)이 잔존 세력을 이끌고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넘어가 서요를 건국하여 명맥을 이어갔고, 또다시 넓은 영토를 차지하게 됩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예전의 영토들은 수복하지 못한 채로 칭기즈 칸의 몽골제국에 의해 멸망하였고, 페르시아 남동부에 후서요(後西遼)를 다시 건국하였지만 끝내 몽골제국에 흡수되면서 그 막을 내립니다. (이렇다보니 현재 중국과 몽골이 서로 자기 역사로 편입시키기 위해 다툽니다.)
자신의 오른팔을 자른 술률평(述律平)
이번 포스팅에서 흥미롭게 다루어보고 싶은 내용은 바로 야율아보기의 부인이었던 순흠황후(淳欽皇后), 술률평(述律平)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술율황후(述律皇后)라고도 합니다.) 술률평은 전쟁터에서 야율아보기의 참모 역할을 할 정도로 지혜롭고 능력이 있었는데, 926년 야율아보기가 죽은 후에,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태자인 야율배(耶律倍, 야율돌욕, 耶律突欲) 대신에 동생인 야율덕광(耶律德光, 후에 요 태종)을 옹립할 정도로 강한 권력을 행사하고는 있었지만, 아무래도 불안하였겠죠. 그리고, 기지를 발휘하는데, 한 편으로는 잔인합니다.
거란은 순장 풍습이 있었습니다. (좀 야만적이긴 한데, 여진이나 몽골, 명이나 청에도 순장 풍습이 있었습니다.) 술률평이 이걸 이용하는데, 자신에게 껄끄러운 신하들을 불러 모은 후에 돌아가신 황제가 그립지 않으냐고 물어봅니다. 당연히 신하들은 그립다고 대답을 하였죠. 그러자 돌아가신 황제를 뵈러 가라면서 모두 죽여서 순장시킵니다. 그 신하들의 부인들에게도 나는 과부가 되었는데, 니들은 왜 지아비가 있느냐는 말과 함께 황제를 따라가라면서 순장하고요. 이렇게 섭정(攝政)에 방해가 되는 인물들을 돌아가신 황제에게 안부를 전하라는 명분으로 계속 죽여서 순장시킵니다. 이렇게 조정을 장악하기 위해 야율아보기 시절의 권력을 가지고 있던 신하들을 모두 정리하기 시작합니다.
(※ 참고로 섭정(攝政)이라는 말은 황제가 아직 어리거나 병에 들어 정사를 돌보지 못할 상황일 때 그 통치권을 대신하는 사람이나 대신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그리고, 여러 전투에서 공을 쌓고 요 태조에게 신임받던 요나라의 장수, 조사온(趙思溫)을 죽이려고 합니다. 명분은 똑같습니다. 너는 돌아가신 선제가 아끼던 사람이니 저승에 뵈러 가야 되지 않겠느냐고 하죠. 그러자 조사온이 선제와 가깝기로는 황후만 한 이가 없는데, 황후 역시 순장을 해야 하지 않느냐, 황후가 순장하면 자신도 따라가겠다 합니다. 여기서, 술률평은 궁색해질 수도 있는 상황인데 아들이 어린 관계로 수렴청정하여 나라를 다스려야 하니 그럴 수 없다고 하면서 자신의 오른팔을 잘라 황제의 묘에 함께 묻고 이걸로 갈음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단완태후(斷腕太后, 팔을 끊어버린 태후)라는 별명을 얻게 되죠. 그리고 반대파들은 계속 순장시킵니다. 다만, 조사온은 죽음을 면하게 되었습니다. (요사에 기록된 이야기입니다.)
조사온의 죽음에 관한 일화
또 한 가지 조금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조사온은 성씨에서 보듯이 거란족이 아니라 한족 출신입니다. 거란군이 발해 부여성을 공격할 때 여러 군데 상처를 입으면서도 직접 성벽을 기어 올라가 전투를 벌인 기록이 있을 정도로 용맹한 장수였죠. 그리고 위의 술률평이 자신의 오른팔을 자르는 그 순장을 빙자한 숙청 와중에서도 살아남았던 그는 자신의 집 정원에서 떨어지는 운석에 맞고 사망하였습니다. (유명한 일화이지만 저는 어떤 사료나 근거를 확인하지는 못하였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무언가 유목민족의 무시무시함이랄까, 어떤 패기가 느껴지는 일화 중의 하나로 역사 속의 이야기를 소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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